고(故) 전라도 병마절도사(全羅道兵馬節度使) 증 병조 판서(贈兵曹判書) 이공(李公)의 뇌사(誄辭) 병인(幷引)
만력(萬曆 명 신종(明神宗)의 연호) 25년(1597) 8월 16일에 왜적(倭賊)이 남원(南原)을 함락하자 명(明) 나라 부총병(副總兵) 양원(楊元)은 포위망을 뚫고 본국(本國)으로 달아났는데, 전라도 병마절도사 이공 복남(李公福男)은 순사하였다. 조정에서 그의 충절(忠節)을 가상하게 여겨 병조 판서에 추증하여 포상하니 이는 예(禮)이다. 공은 우계인(羽溪人)으로 전조(前朝 고려 시대를 가리킴)의 명장 이의(李薿)의 후손이다. 고조(高祖) 지방(之芳), 증조 광식(光植), 조부 전(戩)은 모두 나라의 간성(干城)이었다. 공은 어려서부터 비분 강개하는 큰 뜻이 있었다. 처음에는 글을 배웠는데 마음에 내키지 않아 그만두고 손오(孫吳)의 병법(兵法)을 배워 그 대의를 통하였고, 평생 나라를 위해 몸바칠 것을 다짐하였었다. 그리고 장순(張巡)ㆍ악비(岳飛)ㆍ문천상(文天祥)의 전기를 읽을 적마다 반드시 책을 덮고 눈물을 흘리곤 하였다. 시문(詩文)을 지으면 나는 듯한 기략(氣略)이 있었지만 그런 것 짓기를 탐탁잖게 여겼다. 남을 대해서 고금(古今)의 흥망 성패를 담론하는 대목은 시원스러워서 들을 만하였으므로 남들이 다 기이하게 여겼다.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선전관(宣傳官)을 거쳐 금성 통판(錦城通判)이 되었는데, 관리 노릇을 하면서 매우 꿋꿋하여 남에게 아첨하지 않았으므로, 사람들이 몹시 좋게 여겼다. 임진란(壬辰亂)을 당하여 날마다 군마[戎翰]를 훈련시키어 죽을 힘을 다하여 여러 번 적을 베고 기를 베어 바치니, 그 공으로 붉은 비단옷을 하사받았다. 그리고 인하여 목사(牧使)로 승진하였는데, 그 다스림이 엄정하고 밝고 인자하고 관대하여 교화(敎化)가 크게 이루어졌었다. 공은 전쟁이 그치지 않은 때문에 완력 있고 용감한 사람으로, 투석(投石) 잘하고, 발거(拔距) 잘하고, 활 잘 쏘는 자들을 특별히 모아 5백 인을 얻었다. 그리하여 이들을 막하(幕下)에 예속시켜 번갈아 숙직시켰다. 그리고 밤낮으로 같이 기거하면서 맛있는 음식을 안 먹고, 적은 것도 나누어 먹으면서 충의(忠義)로 격동시키니, 사람들이 다 감격 분발하여 나라 위해 죽을 뜻이 있었다. 마침내 무기를 잡고 호남의 방패가 되어 적을 막으니, 국가에서는 장성같이 의지하게 되었다. 양원(楊元)이 남원(南原)에 있을 때, 대적(大賊) 가등청정(加藤淸正)이 수만의 군대로 호남ㆍ영남을 집어 삼키려 함에 미쳐, 그 세력은 마치 우레가 진동하듯 바다를 휘말듯 하였다. 그런데 양원은 두렵고 겁나는 외로운 성에 의지하여 있었다. 이때 진우충(陳愚衷)ㆍ장유성(張維城)은 다 함께 군대(軍隊)를 억누르고 있는 채 감히 구원하지를 못했었다. 그러자 양원이 공에게 격문(檄文)을 보내어 구원해 주기를 청하였다. 이때 공은 해상(海上)에서 섬진(蟾津)을 방어하여 석만(石蠻)ㆍ행장(行長) 두 적을 막으려 하던 차였다. 이에 격문을 받고는 곧 떠나려면서 군리(軍吏)를 불러 군사들을 모아 놓고 이르기를, "적은 많고 응원은 끊어졌으니, 성의 함락은 기정사실이다. 나는 나라의 중은(重恩)을 입었으니, 가만히 앉아서 보기만 하고 안 갈 수는 없다. 이제 수천 명의 군사로 그 많은 적을 당해내기란 마치 큰 용광로에 기러기 털[鴻毛]을 사르기와 같아, 형편상 요행이 없을 것은 뻔한 일이다. 그러나 장부가 위급한 때를 당하여 신명을 바치는 데 있어 죽음을 사양할 수 없다. 오늘은 내가 죽는 날이다. 그러나 제군(諸君)은 부질없이 함께 죽을 것은 없다. 가고 싶은 자는 가도 되나, 남고 싶은 자는 머물러 있거라." 하자, 장사(將士)들이 모두 울면서, "공을 따라 죽고 싶습니다." 하였다. 이에 정예한 군졸 5백 명을 가려서 남원으로 달려 가니, 적이 이미 포위하였다. 공이 영을 내려 군졸들은 조금도 동요하지 말라. 후퇴하는 자는 반드시 베리라. 하고는 어관진(魚貫陣)을 만들어 죽 늘어서서 징을 치고 함성을 지르면서 북을 치고 진격하니, 적이 보고 놀래어 말하기를, "조선에도 인물이 있구나." 하고는 빨리 길을 열어 주었다. 그러자 공이 고삐를 잡고 천천히 포위망 안으로 들어가니, 성 안의 사람들은 그 두려움 없는 늠름한 표정을 믿음직하게 여겨 환성이 우레 같았다. 양원(楊元)이 공의 손을 잡고 절하며 말하기를, "이제 모두 강병(强兵)을 거느리고도 둘러 앉아 있을 뿐 구원하지 않는 형편인데, 절도사는 고군(孤軍)으로 달려왔으니, 어찌 남조(南朝)의 유일한 이 시랑(李侍郞)이 아니겠소." 하고, 등을 쓰다듬으며 울었다. 공이 이에 군사들을 독려, 바윗돌과 통나무, 그리고 무기 등을 운반하게 하여 남성(南城)을 지키면서 온종일 혈전(血戰)을 하였는데, 적이 육박하여 올라오려고 하면 이내 물리치곤 하여 적을 수없이 죽이니, 마침내 적이 가까이 오지 못하였다. 이튿날 성동(城東)이 무너지자, 공은 남원부(南原府) 청사(廳舍)의 대청으로 달려 들어가 의자에 앉아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양원(楊元)이 부하를 시켜 함께 도망치자고 권유하자, 공이 칼을 만지면서 꾸짖기를, "나는 맹세코 이 성과 생사를 같이 할 것이다. 어찌 한갓 삶을 탐내겠는가." 하니, 곁에서 모두 감히 권하지 못했다. 조금 있다가 군졸을 시켜 섶을 가져다가 둘러싸고 불을 지르게 하니, 바람을 타고 불길이 매섭게 퍼지는데, 공은 그 불길 속에 우뚝히 앉아 있으므로, 적이 보고는 무릎을 치면서 탄복 칭찬하였다. 공이 마침내 의(義)로 죽었으므로, 호남(湖南) 사람들이 지금도 그 일을 말하면 눈물을 흘린다. 군자(君子)는 듣고 말하였다. 변함 없이 지키는 것은 충(忠)이요, 죽을 줄 알고도 과감하게 가는 것은 지(智)요, 조용히 의(義)로 나아가는 것은 용(勇)이다. 오직 충과 지와 용 가운데 그 중 하나만을 달성하는 것도 혹 어렵게 여기는데, 더구나 세 가지를 겸하여 행한 사람이겠는가. 여기에는 의당 뇌사가 있어야 한다. 뇌사는 다음과 같다. 공은 걸출(傑出)이었네/公之挺生 장군의 자손답게/將家之子 특이한 자품 타고났기에/夙稟異姿 두상(頭相)은 모지고 팔은 길었네/銳頭猿臂 일찍부터 바른 교육 받았으니/早服誼訓 오직 효(孝)와 충(忠)이라/惟孝與忠 마침내 경술(經術)을 공부하여/遂討經術 대의(大義)는 벌써 통했네/大義已通 문득 그 붓 동댕이치고/旋投其筆 그 몸을 새처럼 날리려 했네/擬飛而肉 상제(上帝)의 병법(兵法)/上帝韜鈐 칠융(七戎)에 대한 서적들을/七戎流略 꿰뚫어 다 통하니/貫穿馳騁 황석공(黃石公)도 스승 되기 부끄러우리/黃石愧師 기략이 깊고 앎이 통철하여/機深識洞 정도로 들어가 기이함을 보였네/入正出奇 묘하게 버들잎 쏘아 맞히매/妙穿其楊 금방에 그 이름 붙었네/亟名金榜 임금 계신 대궐을/鉤陳廬陛 가까이 보호하니 임금은 의지하였네/昵護天仗 공이 장인(將印)을 손에 쥐니/公也握篆 금위군(禁衛軍)도 꿈쩍 못했고/七萃無譁 병조(兵曹)에 글을 올려/佐書樞省 전쟁 그치길 그윽이 도왔네/幽贊止戈 오직 금주(錦州)는/唯錦之州 서남(西南)의 큰 울타리/西南鉅蔽 식량을 쌓고 군대를 길러/峙餉蓄兵 미친 개 같은 왜놈들을 대적하였네/以抗其猘 누가 그 고을을 보살피어/誰監其州 단련하고 저축할까/以鍊以儲 공이 가야 한다고/公膺汝往 원로들이 추천했다네/元老吹噓 이에 모든 곳간마다/乃箱乃倉 활이며 창이로다/乃弧乃戟 단후의(短後衣)에 만호영(曼胡纓)으로/短後曼胡 기이한 솜씨 있는 검객들이/奇材劍客 우뚝 서서 남쪽을 버티었으니/屹然捍南 마치 물의 제방인 듯/如水之防 왜놈들이 호남에 마구 닥칠 때/方夷闖湖 장사들을 이끌고 홀로 버텼네/提士獨當 은빛 투구 눈빛 깃발/銀兜雪旄 철갑옷에 비단 웃옷/鐵鎧錦裼 적들이 바라보자마자 달아나니/賊望輒北 굳센 적이 안중에 없었네/眼無堅敵 무리로도 잡아오고 목도 베어 바치니/獻醜獻馘 그 공을 견줄 이가 없었네/功無與京 그대에게 옥관자와/錫汝圈玉 붉은 옷에 가죽띠랑 내리고/衣朱帶鞓 절도사의 부절까지 내리니/進綰帥符 백성들은 좋아하여 왜 이제 왔소/民歌來暮 보리이삭도 두 갈래로 푸르르니/兩岐靑靑 백리 안이 태평성세/百里太古 군대를 크게 사열하매/礌臺大閱 우뚝 솟은 산악일레/屹岳冢山 칠찰(七札) 뚫는 활솜씨들/●石洞札 □□□□□/豚視衣斕 술을 줘도 고루고루/惠均投醪 종기를 빤 사람보다 인정이 많아/恩越吮血 죽음에 나아가길 내집 가듯 함은/赴死若歸 오직 공의 군졸들/唯公之卒 이에 옥장(玉帳)을 열고/乃開玉帳 바로 하괴에 임했네/乃臨河魁 남쪽 바다 제압함에/控壓炎海 빠른 군령 바람인 양 우레인 양/令迅風雷 말만한 용성은/斗如龍城 호남 영남 얼리는 곳이라/當湖嶺會 적은 진작부터 호시탐탐/垂涎者久 이곳을 삼키려고 하였지/賊之思吷 기병은 삼천이나/騎士三千 누가 그 형세를 막을 것인가/孰扼其衝 형세 위태롭기 알을 포갠 듯/勢危疊卵 그 담장 높일 이 그 누구인가/疇崇其墉 하란(賀蘭)의 원병(援兵)은 오지 않고/賀蘭不來 단공(檀公)은 장차 달아나려는데/檀公將走 공은 격서로 부름을 받자/公承檄召 이에 당장 달려 가니/爰疾其赴 번개인 양 회오리바람인 양/電邁飆馳 하루에 남원을 당도했네/一日帶方 즉묵(卽墨) 싸움 방불케 하고/兵交卽墨 수양(睢陽)엔 달무리졌네/月暈睢陽 그 군졸 독려하고/乃督其徒 적의 틈을 무너뜨려/乃潰其釁 징을 치며 깃발 날리고/摐鐃颭旆 북을 치며 전진하니/擂鼓而進 적들이 바라보고 놀라서/賊望而駴 문득 한 모퉁이 무너졌네/奄解其隅 위급함을 구하러 달려가니/克赴于急 양원(楊元)은 울고 사졸들은 부르짖네/元涕士呼 낮은 성가퀴 둘러보고는/徇其埤夷 취약함을 바꾸어 철통같이 만들었네/變脆爲鐵 질장구는 하도 쳐서 가운데가 꺾어지고/缶宂中摧 사다리와 충거(衝車)는 밖으로 꺾이었다/梯衝外挫 힘은 다하고 형세가 기울어지자/力屈勢傾 마침내 그 성을 포기하니/終棄其城 그 누가 그 말을 멈춰/孰駐其馬 같이 가자 외칠 것인가/呼與俱行 오직 임금과 나라뿐/唯君與國 죽음만이 나의 구실이라/唯死吾職 성과 함께 죽었으니/城與俱亡 나의 맹세 어김 없었네/我誓靡忒 불더미를 편안하게 여기고/火宅若安 뜨거운 불꽃을 서늘하게 여겼네/烈焰其涼 삶은 구차하고/生則是苟 내 갈 곳은 죽음이라/死是吾鄕 누가 감히 온화할꼬/疇敢雍容 생사의 갈림길에서/死生之際 동군에서 강개심이 북받쳐/東郡忼愾 진원[張睢陽]이 여귀(厲鬼) 되었네/眞源爲厲 해와 달이 빛을 잃으매/日月無光 천지도 어두웠네/天地爲昏 대궐에도 슬픔은 어렸지만/悲纏紫極 그대 넋을 어이 위로하리/曷慰爾魂 병조 판서(兵曹判書)며/可馬尙書 재상(宰相)이라 할지라도/北斗喉舌 그대의 삶은 훌륭하게 만들지 못하나/未侈爾生 그대의 죽음은 의당 영화롭게 하리라/宜寵爾歿 자손에게 벼슬 주고 땅을 주어/官嗣錫野 슬픔과 영광을 다하게 했네/俾極哀榮 아 죽을 데서 죽었으니/嗚呼得死 공은 뜻을 이루었네/公也志成 그 공은 종정에 새겨지고/勳在鼎鍾 그 이름은 역사에 빛나리/名照簡冊 뉘라서 한 번 죽음 없을 것인가/孰無一死 공의 죽음은 결백하여라/公死則白 떼 지어 모여드는 남원 백성은/林林南民 공을 못잊어 울어대며/愛公泣公 공의 덕을 모으고/戢公之德 공의 공훈 사모하여/慕公之功 백 세에 미치도록/俾及百世 공의 생각 변함 없으리/念公不替 두류산 남쪽에/頭流之陽 제향을 받음직하도다/宜享椒荔 사당 짓길 늦출 것인가/築祠非緩 조정의 명을 기다리네/朝命是須 공의 얼굴 내 알거니/我識公面 참으로 열렬한 대장부라/眞烈丈夫 남원으로 감에 미쳐/迨涉于南 그 뜻 더욱 지극했으니/益詳其志 마음 변치 않은 건 충(忠)이고/不移則忠 죽을 줄을 아는 건 지(智)요/知死則智 의리로 나아감은 용(勇)이니/就義則勇 이 세 가지를 누가 갖췄던가/三者疇倂 죽었으나 썩지 않으니/死而不朽 문천상(文天祥)의 철창이라/文山鐵槍 무엇이 유감되고 후회되리오/奚憾奚悔 천추 후에도 여전하리라/千秋如在 내 뇌사 지어/我作誄辭 후대에 고하노라/以詔後代
교산 허균이 쓴 성소부부고의 내용으로, 한국역사정보통합시스템에서 검색한 자료입니다. 아마도 내용으로 보아 허균은 충장공과 생전에 교분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되는데요. 그런데 뇌사의 뜻(의미)이 무엇인가까지는 알수 없었습니다.
허균(許筠 : 1569∼1618)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양천(陽川), 호는 교산(蛟山)이며, 문과에 두번 급제한 후, 좌참찬 예조판서 등을 역임. 저술로는 성소부부고와 홍길동전을 남김.
........................................................................................ ■ 이관준: 그런데 내용 중 충장공의 증조부 光植이 아니라 光軾인 줄로 알고 있는데... -[03/17-17:39]- ........................................................................................ ■ 이석: 부사정공파의 경연(景衍)의 증손이 아닌지! -[03/18-17:31]- ........................................................................................ ■ 이덕세: 움.. 그렇다면 선조임금이 바로 좌찬성을 증직해준 것이 아니었구려. 일단 병판에 증직되었다가 좌찬성에 가증! -[08/29-13:38]-